2011년,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를 비롯해 이동통신사, 카드사를 중심으로 NFC 관련 서비스 준비가 한창이었다.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서울 명동 일대를 NFC 모바일 결제 인프라와 시범 사업 구간으로 선정하고 2월10일까지 3개월간 시범서비스에 들어갔다. 신한, 삼성, KB, 현대, 하나SK 카드도 모바일 카드를 발급하면서 NFC 결제를 준비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저마다 전자지갑 애플리케이션인 ‘스마트월렛’, ‘올레마이월렛’, ‘전자지갑’을 출시해 NFC 결제 지원에 나섰다.
이처럼 국내 NFC 사업 준비는 겉보기엔 순조롭다. NFC를 결제를 지원하는 가맹점들이 늘어나고 ‘손 안의 지갑’ 시대가 시작될 줄 알았다. 국내 NFC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 지난 한해 NFC 시장은 어땠는지를 들었다. 그러자 겉과 다른 속이 드러났다. 국내 이동통신사, 카드사, VAN사들이 NFC 결제 시장을 두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 현재 국내 NFC 시장은 서로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업관계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혼란스럽다.
모바일 vs. 결제, 시장 두고 갈리는 사업 주체
현재 국내에는 정부기관으로는 금융위원회, 방통위, 지경부가 NFC 결제 관련 사업을 추진하거나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민간사업자로는 결제대행업체(VAN), 이통사, 카드사, 휴대폰 제조사들이 NFC 기반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NFC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위원회는 모바일 ‘결제’ 시장이기 때문에 적절한 금융 감독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경부는 NFC 사업을 기존에 하고 있는 전파식별(RFID) 사업의 연장선이라고 판단해 뛰어들었다. 방통위와 이통사, 휴대폰 제조사는 NFC가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결제 시장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활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드사와 VAN사는 NFC 결제도 모바일 ‘카드’를 활용한 시장이라며 자신들이 NFC 결제 시장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나섰다.
서로 적극적으로 NFC 시장에 뛰어든 것은 좋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던가. NFC 모바일 결제 인프라 표준을 두고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랜드NFC코리아얼라이언스에 참여했던 한 은행 관계자는 “우선 행정기관들조차도 NFC를 두고 제대로 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서로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여기에 ‘결제’를 두고 금융위원회 입김까지 작용하면서 기업들은 어떻게 NFC 시장에서 사업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방통위와 지경부간 표준화 논쟁은 표면화된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국내 언론들은 방통위와 지경부, 기술표준원이 비슷한 사업을 하면서 모바일 결제와 방식 표준을 두고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다룬 바 있다. 그리고 1년이 다 되가는 동안 제대로 된 결론 없이 서로 각자 NFC 관련 서비스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정부기관조차 제대로 된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일반 사업자들끼리는 얼마나 대립이 심했겠냐”라며 “국내 NFC 시장은 이권 다툼이 너무 심하다”라고 토로했다.
‘나’만 아니면 되는 NFC 인프라 구축 비용
결제 단말기 구축도 NFC 결제 시장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현재 NFC 서비스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결제단말기 보급”이라며 “어떤 사업 주체가 결제단말기 보급 비용을 낼 것인지를 두고 눈치 싸움이 한창”이라고 말했다.
결제단말기는 NFC칩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읽고 결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결제단말기 구입에 판매업체들이 지불해야 하는 돈은 1대당 20만원 정도다. 이미 신용카드 결제단말기를 갖고 있는 점주들은 추가로 비용을 들여 결제단말기를 구축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국에 약 200만 가맹점에 NFC를 인식할 수 있는 단말기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은 총 6천억원. 실로 어마한 금액에 이통사와 카드사, VAN사는 비용 부담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NFC 시장에서 어떤 수익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구축 비용을 떠안는 위험 부담을 안기 싫다는 것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서 이통사는 결제를 담당하는 카드사에서 구축 비용을 맡는 게 당연하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NFC 관계자들은 “이렇게 이동통신사들이 떠넘긴 구축 비용은 결국 VAN사에게로까지 이어진다”라며 “이통사, 카드사, VAN사 모두 서로 눈치만 보며 기다리다가 2011년이 넘어갔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카드사 관계자는 “결국 서로 눈치만 보다가 한해가 넘어갔다”라며 “2012년이 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달라질 것 같다고는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단 지켜보자’
그래서 카드사를 비롯한 금융권은 현재 NFC 시장을 그냥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언제 수익이 날지도 모르는 시장을 겨냥해서 상품을 출시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금융 업무에 더 충실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선 카드사 관계자는 우선 인프라가 필요한 결제 시장보다는 ‘전자지갑’ 쪽에 초점을 맞춰서 마케팅을 기획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NFC 결제보다는 NFC와 연관된 서비스에 더 집중하고 있다”라며 “전체 카드 결제 부문에서 모바일 결제 비중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무모하게 NFC를 통한 모바일 결제시장에 나서기보다는 스마트금융을 통한 간접적인 지원으로 방향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모바일 카드가 플라스틱 카드를 대체했을 때 발생하는 이점이 없다”라며 “카드사들이 제공하는 할인 혜택도 비용인데, 모바일 카드를 활성화할 경우에는 똑같은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금융감독원이 카드 발급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나선 가운데 올해 카드 발급으로 인한 수익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모바일 카드 활성화에 나설 은행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해 업무보고에서 방통위는 NFC를 7대 신사업 중 하나로 선정해 육성시키겠다고 밝혔다. 방통위 네트워크정책국 인터넷정책과 김태순 주무관은 “명동처럼 NFC 시범사업 거점을 늘려 지방에서도 NFC를 이용한 결제가 가능하게 만들 예정”이라며 “결제 가맹점을 늘리고 버스와 지하철, 택시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서비스를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시민들이 NFC를 활용한 결제를 하기엔 쉽지 않다. 명동에서도 NFC를 이용한 결제 방법을 종업원이 몰라서 처리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방통위는 NFC를 지원하는 가맹점이 늘어나고, 모바일 카드 발급 사례가 증가하면 연내 1천만 NFC 결제 이용자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NFC에 대해 관심만 많고 어떻게 인프라를 구축할지 모르는 사업단체들과 함께 정부기관들이 2012년에 NFC를 활용한 결제 시장을 꽃피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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