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한 것도 없이 한 해가 가버렸습니다. 특히 [보다]의 입장에선 더욱 말이죠. 별다른 활동도 없이 불쑥 이렇게 결산만을 하는 게 겸연쩍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엔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는 뜻으로라도 이렇게 결산 결과를 올립니다. [보다]의 활동은 미진했지만, 음악계는 풍성했습니다. 하나같이 다들 올해엔 좋은 음반들이 많이 나왔다고 얘기합니다. 당분간 이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다는 사실이 더욱 고무적입니다. 내년에는 저희도 더 부지런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여: 김윤하, 김창현, 김학선, 단편선, 문정호, 서성덕, 서정민갑, 손명환, 이경준, 조성호
1.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2011/붕가붕가레코드)
2008년 이후 장기하의 행보는 점점 커지는 그릇의 크기를 채우는 것으로 대변된다. 세대를 관통하는 참신함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창작에 대한 의심과 패러디 문화의 일환일 뿐이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그러나 장기하는 얼굴들을 대동하며 스타 밴드로 도약했고, 자신의 음악이 단발 이슈에 머물지 않음을 증명했다. 신보에서 궁금했던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 밴드가 된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전보다 커진 그릇의 크기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채울 것인가? 결과는 아주 훌륭하다. 정규 편성으로 자리 잡은 키보드 활용과 적극적인 코러스 운용을 통해 본인들의 사운드를 보다 명확히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좋은 곡들이 쏟아졌다. 특히 <마냥 걷는다>는 흉내와 모사가 주는 재미에 가볍게 치부되었던 장기하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명곡이다. 특유의 기발한 발상이 유명 엔지니어들의 손길을 거치며 근사한 소리의 질감을 획득한 것도 빠질 수 없다. 많은 음악인들이 한바탕 현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본질적인 물음에 방황하곤 한다. 그러나 장기하가 부담을 떨치는 광경은 능숙함 그 자체다. 이는 유연함 이전에 뚝심이다. (문정호)
이번 음반이 중요했음은 팬들이 먼저 알았고, 아마 장기하 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함량미달의 작품이 등장했을 때 나오게 될 "내 그럴 줄 알았어" 류의 그 수많은 비난들. 이번 음반은 확실히 예상을 깬 음반이다. 전작이 '한국 록의 사료들을 키치하고 흥겹게 변용한 음반'이라면, 본 앨범은 그를 넘어서 '한국어로 록 하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동반된 음반이다. 내용물을 들어본다면 그런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또 그 이상이다. <마냥 걷는다>와 <그렇고 그런 사이>를 비롯한 거의 모든 구간들에서 언어적 질감을 넘어선 '사운드 완성'에 대한 집착이 스며 나온다. 그래서? 좋은 음반이라는 소리밖에는 할 말이 없다. 심지어 내가 이 음반을 올해의 음반 후보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지는 않다. (이경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장기하, 그리고 이 앨범을 이겨낼 음악가와 앨범은 극히 드물 것이다. 이 셀프 타이틀 앨범 안에서, 장기하는 무엇보다도 또 누구보다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인다. 데뷔 앨범에서 호평 받은 모든 요소를 그대로 살린 채 보다 탱탱하게 살아난 밴드의 호흡이나 넓어진 악곡 스펙트럼 같은 이런저런 설명이 구차하게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직전 앨범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뷔 앨범이었음을 떠올려보면 이 여유와 능청이 징그럽기까지 할 정도다. 예의 유머를 잃지 않은 멜로디와 리듬 안에서 덩실대는 이 음악가를 보고 듣다 보면, 덩달아 즐거워질 수밖에 없다. 정말 즐기는 자를 이길 사람, 아무도 없다. (김윤하)
2. 이승열 [Why We Fail] (2011/Fluxus Music)
곡쓰기와 가사, 연주, 그리고 그 정서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앨범의 만듦새는 '탄탄함'이라는 단어로 집약 할 수 있을 것이다. 경력 20년을 바라보는 로커가 만들어내는 정말 '어른'스러운 음악. 만약 한국에서 '어덜트 컨템퍼러리' 라는 용어를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이승열은 그 안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로 기록될 것이다. (서성덕)
난 이 앨범을 관성적으로 '모던 록'으로 분류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승열은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모던 록의 전도사 정도로 평가받았던 그는 이제 (라이브 무대에서는 더욱 더) 클래식 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유앤비 블루 데뷔 전 마천에 머물며 처음 들었던 과거의 소리들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한층 더 견고하게 사운드를 쌓아 올리고, 그 가장 끝에 여전히 매혹적인 목소리를 얹는다. 그리고 가끔씩 그것은 숭고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김학선)
전작 [In Exchange](2007)의 노선을 반복했다면 노래가 더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이승열은 또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앨범이 주는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소리의 결이나 여백이 주는 느낌에 몰두했음에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이승열은 이승열이고 앨범에 임하는 진중한 태도만큼이나 좋은 앨범이 나왔다. (문정호)
3.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우정모텔] (2011/Cavare Sound)
돌이켜보면 그들의 공연을 종종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가장 감탄했던 것은 앰프의 볼륨을 절대 끝까지 올리지 않으면서도 공간에 맞게 꼭 필요한 만큼의 공간감, 그리고 텐션과 그루브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아주 적당한 정도의 다이내믹(직접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적당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조웅과 임병학, 그리고 객원인 드러머, 이렇게 3인조의 심플한 편성에서의 공연이 가장 유기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듯 보였으며─그 시점이 다음 음반의 믹싱을 하고 있단 소문이 공공연히 돌던 시절이었으니─곧 발매될 음반에서도 라이브에서의 강점이 잘 드러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정모텔]은 그러한 기대를 어느 정도 배반하는 길을 걸었다. 드럼을 직접 녹음하는 방식이 아닌 프로그래밍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어찌되었건 [우정모텔]은 다이내믹하기보다는 오히려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공연을 적잖이 본 것도 영향을 주었던 것일 테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내게 [우정모텔]에 대해 묻는다면 (심미적인 관점에서) '훌륭하다'나 '좋다' 혹은 그 이하들 사이에서 나는 쉽게 답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나 '즐겨 듣는 음반'이라고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믹스나 어레인지 등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크게 멋을 부리지 않아 아티스틱하게 느껴지진 않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즐겨 듣기엔 역시 무리가 없는 것이다. "사람 살다 보면은 괜히 맘 가는 사람 있드라" 같은 노랫말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것이 한계라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입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아티스틱한 성취 같은 것들이 그들의 목표는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들(혹은 뉘앙스들)에 대해, 나는 한편으론 여유를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이 가기도 한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 행해지는 작업들 중 (전통적인 의미에서) 마냥 아티스틱하기만 한 것들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어지는 추세인데, 사실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서라도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다음 행보가 여전히 기대된다. (단편선)
새벽 4시 홍대 곱창전골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듣는 피쉬만즈랄까. 그리고 그 소주는 참이슬이 아닌 진로여야 한다. 구남은 한강의 기적 이면에 서있는 88만 원 세대들의 감성을 궁상맞고 독하게 노래하는 블루스이다. 그렇지만 술이 깨고 첫차에 몸을 실으면 밀려드는 공허감은 뭘까. 내 월급은 188만 원이어서일까. (김창현)
지난 수 년간 2집 낸다 낸다 소문만 많던 양치기 청년 구남의 축축하고 뜨거운 라이브에 푹 빠졌던 이들 중, 이 앨범을 듣고 실망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당혹스러움은 아마도 이들이 앨범 안에서 셔츠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정색을 하고 있던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늘 취한 듯 정신줄을 놓고 '도시에서만 살기엔 젊음이 아깝다' 외치던 이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 멀끔한 첫인상의 충격만 견뎌내고 나면, [우정모텔]은 곱씹을수록 무언가 끝없이 우러나는 곰탕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낭만, 청춘, 성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눙치는 농담과 눅진한 리듬. 도시를 떠나는 젊음을 노래하던 이들은, 이젠 건강하고 긴 삶을 노래한다. 이런 앨범과 이런 음악가,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을까. (김윤하)
4. 정차식 [황망한 사내] (2011/Capsule Roman)
가끔 덜컹거려도 망설이거나 머뭇대는 법 없이 나아간다. 의외로 다양한 스타일을 품고 있음에도 어지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돌파'의 정서를 트랙들 사이 가장 깊은 곳에 깔아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진 목소리의 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그 결과 우리는 올해 가장 멋진 댄스 트랙을 생각지도 못한 음반에서 찾아내는 기쁨을 누렸다. (서성덕)
기획되고 조율되어 만들어지는 음악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아직도 이처럼 뜨겁게 자신을 드러내는 음악이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고전적인가. 정차식이라는 뮤지션의 아우라를 압도적으로 내뿜는 음반은 탐미적인 멜로디와 고백적인 어조, 미니멀한 연주로 위태롭고 아찔하게 아름답다. 처연한 사내의 내면을 극한까지 드러내는 강력한 매혹은 음악으로 발현되는 뮤지션의 존재감과 음악의 힘 그 자체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음악으로나 스타일로나 올해 가장 우뚝한 봉우리이며 진정한 성인 음악. (서정민갑)
4. f(x) [Hot Summer] (2011/SM Entertainment)
[Hot Summer]의 원본 [Pinocchio](2011)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공존하는 독특한 앨범이다. 굳이 공존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그 안 좋은 점조차 흥미롭게 들렸기 때문이다. 외부 작곡가들의 곡을 적극적으로 반영했지만 레이블 특유의 어법과 가치관을 적용시켜 보편적이고 무난한 선택을 했을 때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그룹의 특징을 단단하게 고수한 것이 인상적이다. <Lollipop>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재활용 없이 열 곡만을 담은 것도 명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족일 수밖에 없는 리패키지를 지지한 것은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서 작품의 완결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히 <Hot Summer>와 <좋아해도 되나요>와는 달리 <LA chA TA>와 <Chu~♡>는 기존 사운드에 동화되지 못한 채 보너스 트랙에 충실할 뿐이다. 위화감을 고려하면 아예 제외하거나 리믹스를 통한 가공이 더 적절했겠지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덕분에 디지털로만 유통되었던 <LA chA TA>의 소장 가치는 지켜졌다.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그러한 서비스가 더 만족스럽게 와 닿는다. (문정호)
f(x)의 앨범은 올해의 아이돌 앨범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언더그라운드 혹은 인디 음악이라고 불리는 음반들보다 f(x)의 음악은 더 실험적인 면을 갖춘 동시에 거대자본의 힘으로 분업화되어 완성도까지 겸비했다. 리패키지 앨범을 뽑은 이유는 위의 의견과 같다. (손명환)
6. 불싸조 [뱅쿠오: 오늘밤 비가 내릴 모양이구나/첫 번째 암살자: 운명을 받아들여라] (2011/Pastel Music)
비아냥의 의미를 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어찌되었건 불싸조는 오타쿠의 음악일 수밖에 없다. 불싸조가 재미있게 들리는 것은 음반을 듣는 것 자체가 무차별적인 소비 내지는 콜렉팅의 쾌감과 비슷한 무엇을 제공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 음반은 여러 부분에서─이를테면 맥락 없이 이런저런 장르를 인용한다거나 갑작스런 샘플링을 외삽한다거나, 게다가 목적 없이 정열적이라거나─순수한 소비 내지는 소진(exhaustion)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음반을 듣는 청자들 역시 과잉소비와 소진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말초적인 쾌감이나 흥미 같은 것을 빼고선, 이 음반에서 어떤 미덕이라거나 덕목이라거나 가치라거나 미래 같은 것들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처음부터 그것을 볼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순수한 소비라거나 소진이라거나 탕진이라거나 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할지언정 개개 오타쿠나 콜렉터 고유의 오리지널한 측면, 즉 레시피는 남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편선)
카세트테이프로만 제작된 탓도 있고 트랙간의 구분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있겠지만, 이 앨범은 마치 하나의 곡처럼 흘러간다. 2집이 그랬던 것처럼 포스트 록을 비롯한 각종 장르가 섞이고 또 각종 다양한 샘플과 스크래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거친 소리들 사이에서 갈고리(hook)처럼 귀를 잡아채는 한상철의 비범한 멜로디와 '조져주는' 고영일의 드럼 연주가 40분 가까운 시간 동안 내내 이어진다. 그 어떤 것도, 결코 장난이 아니다. (김학선)
7.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까만 타이거] (2011/Sha Lable)
그들에게 음악은 '청각 예술'이기 전에, 시각과 두뇌를 동반해야 하는 '복합적 텍스트'였다. 이전 앨범을 주의 깊게 감상한 자들이라면 이에 쉽게 동의할 것이고, 이는 간만의 정규작인 [까만 타이거]에서 더 매혹적인 형태로 지양되었다. 허클의 핵심인 메시지와 음의 흡착성은 더 강화되었고, 가사에 대한 상념이 깊어진 만큼 사운드에는 큰 변화가 동반되었다. 심지어 일부 팬들은 전반부 트랙은 기존 허클에 대한 반역이자 변절로 생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앨범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주머니를 삐져나오는 법이다. 일상의 그 모든 편린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음악을 하는 자의 독백체의 고백까지. 그 모든 것들이 고립되지 않은 형태로 녹아 들어간 음반은 예상보다 찾기 어렵다. 이들은 그것을 해냈고 평가는 이렇게 남겨졌다. (이경준)
한 장의 음반도 허투루 내지 않은 허클베리 핀이지만 많은 이들이 허클베리 핀에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딱 정해져 있다고 단정할 때 허클베리 핀은 그 익숙한 오해와 고정관념으로부터 다시 탈주했다. 리듬이 육화되어 피처럼 돌고 살처럼 뛰는 음악은 2011년 한국 록의 절정이다. 직설적이고 치명적인 직관적 감동과 은유적 상징은 우리를 춤추며 시대의 중심을 향해 묵묵히 응시하게 한다. 수록곡 모두를 대표곡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일관된 완성도를 가진 음반이 얼마나 더 있는가. 반드시 더 오래, 더 깊이 곱씹어야 마땅한 명반이다. (서정민갑)
8. 버벌 진트(Verbal Jint) [Go Easy] (2011/Brand New Music)
버벌 진트는 힙합을 오랜 동안 해온 음악인이지만, [Go Easy]를 '힙합'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이 음반에서 그는 매우 영민하고 세련된 음악(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음반이 힙합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치 않다. 자신을 힙합 '장르' 안에서만 평가하려 하는 대중(힙합팬들)의 시선을 멋지게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벌 진트가 앞으로도 힙합을 완전히 벗어나서 다른 모습을 보일지 아니면 더욱 견고한 '모던 라임'과 '타이트한 비트'를 들고 다시 힙합으로 돌아올지 미지수지만 버벌 진트의 행보가 기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성호)
서울대 출신에 아우디를 끌고 다닌다. 거기에 엣지있는 외모까지! 하이클래스 아티스트만 취급하는 현대카드가,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이끄는 여성지들이 사랑하는 그는 명실상부 '핫'한 아티스트이다. 음악도 '핫'하다. 그렇지만 내 여동생은 절대 못 주겠다. (김창현)
9. 검정치마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2011/Doggyrich)
검정치마의 첫 번째 음반은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지해준 평단과 팬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두 번째 음반에서도 보여줬다. 이 음반엔 청춘, 젊은, 낭만, 평화, 그리고 사랑 모든 게 빼곡하게 들어 있다. 수영장 위에 기분 좋게 떠있는 느낌의 음악이랄까? 검정 치마는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을 수 없는 원맨밴드다. (조성호)
올해 지산 페스티벌의 진짜 헤드라이너가 UV였다는 것이 반쯤 농담이라면, GMF의 진짜 헤드라이너가 '검치'였다는 것은 거의 농담이 아니다. 조휴일의 위화감 없는 한국어 인디 록이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가 미국에서 왔다는 일말의 꺼림칙함조차 날려버린 두 번째 앨범은 어떠할까. 검정치마는 합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 (서성덕)
10. 이디오테잎(Idiotape) [11111101] (2011/VU Entertainment)
라이브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음반으로 담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이디오 테잎의 음반이 매력적인 것은 바로 그 에너지를 온전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들이 신디사이저와 드럼으로 만들어낸 리듬감은 현란하면서도 우직하다. 복고적인 찰기와 투박한 정공법으로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자생성을 증명하는 현 주소이다. 오래도록 음악을 들어온 이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백전노장의 사운드. (서정민갑)
이디오테잎에 관하여 가장 근사한 것은 가능성이나 근사치가 아니라, 철저하게 완성된 형태의 데뷔 앨범을 만나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각고의 경험과 노력이 들어간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다 필요 없고' 결과물로 말하는 당당함은 아름답다. '록 밴드' 서바이벌까지 필요한가 묻는 사람들에게 이만하면 답이 될 것이다. (서성덕)
11. 얄개들 [그래, 아무 것도 하지 말자] (2011/ Beatball Music)
브릿팝과 산울림을 둔촌주공아파트 소년의 감성으로 버무린 역작. 빈틈과 부족함이 있어서 더 모성본능을 자극하고 훈훈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년과 사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는지. (김창현)
얄개들은 현재 한국에서 등장하고 있는 신인들 중 가장 훌륭하다. '훌륭하다'라는 평은 통상적으로 일종의 규범적인 상을 전제해놓고 하는 말이니, 다시 풀자면 얄개들은 현재 한국에서 등장하고 있는 신인들 중 가장 규범에 부합하다, 가장 정도(正度)로 가고 있다 할 수 있단 이야기다. 이를테면 얄개들은 창의적인 기타 플레이와 적절한 그루브를 만들어주는 리듬 파트, 그리고 심플하지만 인상적인 보컬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어레인지는 복잡하진 않지만 정교하여 단조롭다기보다는 효과적으로 들린다. 그것들을 소화하는 밴드의 능력도 좋은데, 다른 말로 앙상블이 훌륭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크게 성의를 쏟는 부분은 아닌 것 같지만 섹슈얼한 은유가 간간이 엿보이는 노랫말도 또한 매력적이며 연주와도 착 달라붙는다. 대부분의 밴드들에게 요구되는 밴드의 규범을, 그들은 아주 모범적으로 만족시켜주고 있다. 즉 얄개들은 굉장히 밴드다운 밴드다(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밴드다운 밴드는 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모처럼 정도의 길을 잘 걷고 있는 밴드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은 특히 한국에서라면, 필요한 일이다. 다만 밑밥을 깔자면, 정파가 있으면 사파가 있듯 정도만 길인 것은 또한 아니겠다. (단편선)
12. 조덕환 [Long Way Home] (2011/Rubysalon Record)
세시봉 열풍이 미디어의 어느 지점을 잠식할 때, 조덕환은 음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리했고 매우 소심한 자세로 본 음반을 툭, 던져놓았다. 아무도 그에게 주목하기를 꺼렸을 때, 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열정적으로 버렸으며 모두가 변신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는 유물들의 파편을 조립하고 있었다. 서던 록과 프로그레시브, 포크와 록의 기이한 결합물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며 본 음반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것을 '전관예우'라는 이름에 대한 거부감에서 기원한 또 다른 편견이라고 부를 셈이다. (이경준)
한국 록의 오래된 과거 진행형이 이 한 장의 앨범에 모두 담겼다. 진정한 의미에서 거장의 귀환이며 현재작이다. 자신이 들어왔고 사랑했던 음악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놓으며 조덕환은 과거의 영광이 결코 일회적인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고 오래된 음악의 아름다움을 실재로 웅변했다. 복고와 재현의 열풍 속에서 그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을 제 몫의 음악으로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감을 보여준 노장 로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수만 리 먼 길>과 <제한된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 속으로>는 들어도 들어도 번번이 가슴 뭉클하다. (서정민갑)
13. 엠씨 메타와 디제이 렉스(MC Meta & DJ Wreckx) [DJ And MC] (2011/Basic Entertainment)
한국에서 힙합은 뿌리를 제대로 가진 적도, 힙합이라는 독립된 하나의 문화로서 받아들여졌던 적도 없다. 한국에서 힙합은 음악으로서, 패션으로서, 춤으로서 분절적으로 수용되어 각 분야에서 힙합의 한 단면만이 부각되어 다소간 기형적으로 받아들여진 경향이 있다. 이 앨범의 가치는 한국 힙합이 가지고 있던 그 약점을 극복하며, 원래의 뿌리를 (거의 처음으로) 그려보려 시도한 음반이란 점이다. 물론 원래 한국 힙합에서 그러한 뿌리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 앨범은 지금 한국 힙합의 클리셰 위에서 '원래 한국힙합 뿌리는 이랬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그 필연적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힙합 앨범에서 뿌리로 돌아가자, 라는 구호가 대단히 공허하게 들렸던 것에 반추해볼 때, 그 뿌리가 이러해야 했다고 제시한 것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한 의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힙합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가진 앨범을 들으면서 긍정할 수 있었던 게 대단히 오랜만이기도 했다. (손명환)
한국 힙합의 두 거장이 함께 만들어 낸 절정의 순간. (서정민갑)
14. 시모(Simo) & 무드 슐라(Mood Schula) [Simo & Mood Schula] (2011/Studio360)
이름값이 없어서 그랬는지 힙합 씬에 두 귀를 열고 있는 팬들의 다수가 나이 어린 친구들이라 그랬는지 모를 일이지만, 시모 & 무드슐라의 음반이 힙합 팬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지 못한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이 창조해 낸 사운드는 올해 나온 어떤 한국 힙합 음반의 비트보다 좋았으며, '작가주의'(?) 힙합의 역사를 쓴 음반이라 감히 말하겠다. 그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그들의 결과물이 그것을 증명해 냈으니 하는 말이다. 올해 한국힙합 단 한 장의 음반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난 [Simo & Mood Schula]를 택하겠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성호)
한국 힙합의 또 다른 부채였던 오리지널리티의 부족에 따른 강박을 다소간 없앤 음반이다(이 앨범이 플라잉 로터스 부류의 한국 버전이란 감상은 그 장르에 대한 이해 없는 단순감상이 불러 올 수 있는 부정적 단면의 가장 명확한 예로써 기억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시모가 인터넷에 올린 여러 작업물과 비교해봤을 때, 이 앨범에서 보여준 시모의 음악은 그의 엄청난 음악적 스펙트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시모의 앨범을 기다렸을 몇몇 힙합 팬들에게는, 시모가 꾸준히 자기 감을 가지고 음악하고 있음을 확인시킨 음반인 동시에 (그들이 시모에게 기대했던) 한국 앨범을 뒤엎을만한 엄청난 한방이 아님에 조금의 섭섭함을 느낄만한 앨범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으로 시모를 알게 된 이들에게는 이 앨범은 기술의 발전과 한 개인의 장인정신이 음악의 표현 범위를 얼마나 확장시켰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인 동시에, 힙합이라는 변태적 작법이 다른 음악 장르들을 어떻게 소화시켜서 변형시킬 수 있는지 충격적으로 보여줄 음반일 것이다. (손명환)
15. 몬순 누이(Monsoon Nui) [Monsoon Nui 3] (2011/Monsoon Nui)
좋은 음악이려면 항상 청각적 재미를 일차로 주어야 한다는 일반적 접근이 유일한 잣대일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앨범이다. 동시에 음악이란 장르의 표현 범위가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몬순 누이의 음악은 항상 한국 힙합의 성취이기보다 한국의 독립 음악, 독립 음악의 성취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물론 음악적으로 항상 한국 힙합의 작법과 상당히 멀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들이 항상 그 자신의 음악과 내면에 충실한 실험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작품은 이들의 실험의 완결에 가까운 앨범이다. 앨범을 들으면서 필연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건 작년에 개봉한 영화 [인셉션]인데, 누이라는 작가의 가장 깊은 무의식 림보 속 해변을, 그 의식을 불태워 소멸시킴을 어쩜 이렇게 청각적으로 형상화해낼 수 있는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의 가사 텍스트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지만, 그 가사를 알아들으려 노력하며 듣기보단 그 소리가 각 청자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떤 감흥을 부르는지에 집중할 때 이앨범을 가장 능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ps. nui obidil 의 obidil을 역으로 읽으면 libido가 된다!) (손명환)
힙합을 넘어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작가'란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듀오다.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비타협적이고 치열하게 소리를 탐구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해냈다. 이들의 음악을 듣는 그곳이 늪이고 동굴이다. (김학선)
16. 옐로우 몬스터즈(Yellow Monsters) [Riot!] (2011/Old Records)
라이브에서 더 생명력을 발휘할 음반이라는 견해에 대해 찬성한다. 그렇다고 스튜디오 음반의 결과물이 뒤쳐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펑크와 메탈, 소위 이제는 사라진 헤비뮤직에 대한 근본적 호감에서 출발한 본 앨범은 새크리파이스의 음반과 함께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2011년의 헤비니스 뮤직이 무엇인지를 명쾌한 어조로 알려준다. 들어보면 확실해진다. 그 제목처럼 몸을 들썩이게 하며, 날카롭고 공격적인 리프는 1집보다 더 강렬하게 오감을 자극한다. (이경준)
전작 [Yellow Monsters](2010)도 충분히 화끈한 음악이고 3인조 편성 특유의 원초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앨범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성과 멤버 구성에 따른 의외성 또한 흥미로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이합집산에 비해 조금 더 뛰어난 결과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Riot!]는 찝찝함을 말끔히 씻어 주는 쾌작이다. 시작부터 공격적인 메시지가 주류를 이루지만 여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문자의 나열이나 구호가 아니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리프의 향연이다. 본진이 어디인지에 대한 대답이 스튜디오 작업의 완성도와 라이브 질감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결과물 안에 담겨 있다면 왕성한 창작욕과 현장을 향한 끊임없는 갈증은 지속성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제 옐로우 몬스터즈의 경쟁 상대는 이름값만 남은 과거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당대의 가장 뜨거운 밴드들이다. (문정호)
17. 문샤이너스(The Moonshiners) [푸른 밤의 Beat!] (2011/Rubysalon Record)
사실 난 2011년 평론가와 대중을 불문하고 사방팔방 호평을 받고 있는 이 앨범이 문샤이너스의 베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는 문샤이너스는, 원래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주는 밴드다. 다만 지난 앨범의 핀트가 뭔가 한참 어긋나 있었을 뿐이었다. 유쾌함과 연주력, 카리스마와 매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이 밴드는 앞으로 이 정도, 아니 이보다 훨씬 끝내주는 로큰롤 앨범을 몇 장은 더 만들어 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그 동안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김윤하)
차승우와 멤버들의 관심사는 분명했다. 고전적 사료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법을 제시하는 것. 1집에서 드러낸 태도가 더 정교해졌다. 시대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사료들을 꺼내어 복원하고 재생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분명히 역주행하고 있다. 시대는 그것을 역주행이라고 부른다. 그런 태도는 이제는 '의미 없는 몸부림'으로 전락했는가. 앨범과 그에 수록된 곡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군가는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보편성은 만들어지고 이어진다. 재료나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서 문샤이너스는 이들의 지향점이 어디이고 그들이 얼마만큼 그에 도달했는지를 증명해내고 있다. (이경준)
18. 눈뜨고 코베인 [Murder's High] (2011/붕가붕가레코드)
이들이 여전히 장난 같을 수도 있다. 솔직히 장난 같은 밴드가 좀 많나. 그런데 그 장난 같은 것이 10년을 채웠다. 앨범 전체에 걸쳐 변화무쌍한 스타일마다 말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공력은 시간을 먹고 자란 것이다. 괴악한 센스만으로 좋은 음악이 나온다면 참 좋겠지만, 지난 10년간 이름만 떨치고 사라진 다른 밴드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눈뜨고 코베인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도. (서성덕)
프론트맨 깜악귀는 언젠가 "음악을 하는데도 근육 같은 게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질 수밖에 없다"라 말했다 하는데, 솔직히 일반론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눈뜨고 코베인에 한정해서라면 그 발언은 옳다 할 수 있겠다. 곧 밴드 결성 10주기를 맞는 눈뜨고 코베인의 이번 신보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무엇을 해볼 것인가'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다는 '무엇을 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이 음반의 음악적 성격은, 그들이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떠나 타이트한 팝 음반처럼 보인다. 간혹 과잉으로 치닫기도 했던 전작들에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 결과에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겠으나 최소한 밴드로서는, 방향을 정확히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눈뜨고 코베인은 원래부터 밸런스보다는 아이디어가 강한 밴드였다. 그리고 신보에서는 여전히 많은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전까지의 약점이었던 밸런스를 보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EP를 포함해 이미 넉 장의 디스코그래피를 보유한 밴드이기는 하지만, 이번 작을 2010년대를 여는 밴드의 새로운 출발이라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단편선)
19. 트램폴린(Trampauline)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2011/Pastel Music)
사람들이 그간 기다려왔던 건, 어쩌면 딱 이 정도의 이질적인 사뿐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집에서 이미 한 번 공개된 바 있는 차효선만의 원더 랜드와 이번 앨범부터 정식멤버로 함께 활동을 시작한 기타리스트 김나은의 오묘한 와우기타가 만나 절묘한 밸런스를 맞춘 이 앨범은 우리를 적당히 춤추고, 적당히 꿈꾸게 한다. 그것도 자신들만의 '흥'으로. 이 '적당히'와 '자신들만의'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아는 당신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김윤하)
한국산 신스팝,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현주소이다. 애교로 받아들인다면 그럴 수 있지만 '힙'하다고 한다면 '노'다. 새로운 사운드도 아닐뿐더러 이런 홍대산 학예회식 사운드가 '톱 20' 안에 선정된 것은 탁월한 장르 선택 덕일 것이다. 글쎄, 홍대 맛집멋집 탐방 코너의 '연인과 맥주 한잔 하면서 일렉트로닉 공연보기' 코스로는 손색이 없겠다. (김창현)
20. 썩 스터프(Suck Stuff) [Hate & Love] (2011/Dope Entertainment)
'펑크'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장르를 떠나 썩 스터프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해냈다. '남자' 혹은 '사내'란 말 대신 '수컷'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을 비장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김학선)
여기 날 선 '사나이'들의 음악이 있다. 그들의 뜨거운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초'가 아니다. 사나이들이 가는 길. 그곳에 피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놓여 있다. 썩 스터프의 [Hate & Love]는 그 사나이들을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음악이다. 사나이로 사는 일, 그것이 썩 스터프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들의 목소리로 말이다. 마초가 아닌 사나이가 되고 싶다면 어서 [Hate & Love]를 무한 반복하라. (조성호)
20. 카입(Kayip) [Theory Of Everything] (2011/Luova Factory)
그간 신전 터져나간다는 '홍대여신'만큼이나 지겨웠던 단어 가운데 '감성 일렉트로니카'가 있었다.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단어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건 무엇인가. 연역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컴퓨터로 찍은 보사노바 리듬에 고양이 흉내를 내는 여자보컬이 속살대면 되는 것 같긴 한데, 나로서는 도무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감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의아함도 지쳐갈 무렵, 카입의 이 앨범을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앨범이 그 묘연한 단어의 해답이 되어 줄 첫 열쇠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꼼꼼하게 다듬어진 소리들이 만들어 내는 숲은 깊고 어둡고, 우리를 걷고 또 걷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은, 늘 그래왔듯 좋은 음악이다. (김윤하)
어쩌면 전형적일 수 있는 음악이지만, 그 전형을 만들어왔던 음악들만큼이나 인상적인 결과물을 담아냈다. 비록 앞서가진 못했지만, '아름답다'는 말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앰비언트 음악이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하고 있다. '앰비언트'나 '일렉트로닉'이란 말에 겁먹을 필요 없이 시종일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전자음악이다. 아름답고, 그윽하고,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김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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